Hunting Ground
동물의 흔적을 읽는 네 가지 단서
동물의 흔적은 자료다. 그러나 자료는 읽는 사람만 자료가 된다. 흔적은 어디에나 있지만, 그 흔적이 의미를 가지려면 네 가지 단서를 함께 읽어야 한다. 깊이, 폭, 방향, 신선도. 이 네 가지를 한 자리에 모아 본 사람만 좋은 추적자가 된다.
첫째, 발자국의 깊이

발자국의 깊이는 그 동물의 무게를 말해 준다. 같은 종이라도 어린 개체와 성숙한 개체는 깊이가 다르다. 같은 무게여도 빠르게 달려간 동물과 천천히 걸어간 동물은 깊이가 다르다. 빠르게 달린 자국은 발 앞쪽이 더 깊고, 천천히 걸어간 자국은 발 전체가 고르게 깊다.
흙의 상태에 따라 같은 무게의 발자국이 다른 깊이를 가진다. 마른 흙에서는 얕고, 젖은 흙에서는 깊다. 그래서 깊이를 비교할 때는 같은 흙의 자리에서 비교해야 한다. 다른 자리의 발자국 깊이를 비교하면 잘못된 결론에 도달한다. 추적자의 가장 자주 하는 실수가 이 비교의 오류다.
자의 자리
발자국의 깊이를 측정할 때는 작은 자를 같이 사진에 담는다. 자 없이 찍은 사진은 다음 자료로 쓰기 어렵다. 정찰 사진의 기본기는 이 자료성에 있다. 자의 자리, 빛의 각도, 배경의 표지가 한 장에 다 들어가야 한 장이 자료가 된다.
둘째, 발자국의 폭
발자국의 폭은 그 동물의 종을 거의 결정한다. 같은 폭의 발자국이라도 발가락의 수, 발톱의 자국, 발바닥 패드의 모양이 다르면 다른 종이다. 폭은 깊이보다 더 정확한 종의 자료다.
북미의 야생 동물 자료를 정리한 자료들은 종별 발자국 폭의 표준 범위를 제공한다. 오랫동안 야생 동물의 자료를 모아 온 단체 중 하나가 미국 오듀본 학회다. 오듀본 학회의 야생 안내서는 새와 동물의 식별 자료를 한 권에 모아 두었고, 발자국 식별의 첫 자료로 활용된다. 처음 추적을 익히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보는 자료가 이런 종합 안내서다.
두 발자국의 간격
발자국의 폭과 함께 두 발자국 사이의 간격도 본다. 이 간격은 그 동물의 보폭, 즉 한 걸음의 길이다. 보폭은 그 동물의 종과 크기를 동시에 말해 준다. 작은 동물의 빠른 걸음과 큰 동물의 느린 걸음은 비슷한 간격일 수 있다. 그래서 보폭만으로는 종을 알 수 없다. 폭, 보폭, 깊이의 세 가지를 같이 보아야 한다.
셋째, 흔적의 방향
흔적의 방향은 그 동물이 어디로 갔는지를 말해 준다. 방향을 읽는 일은 단순해 보이지만, 야생에서 가장 자주 틀리는 자료가 방향이다. 동물은 직선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자기 자리에서 휘어 가고, 갈림길에서 다시 휘어 들어간다.
발가락의 방향이 그 동물이 가고 있는 방향이다. 발뒤꿈치의 자리는 그 동물이 떠난 자리다. 두 자리를 잇는 직선이 그 동물의 한 걸음의 방향이지만, 한 걸음의 방향이 그 동물의 진로 전체와 같지는 않다. 여러 걸음의 방향을 모아서 보아야 진로가 보인다.
방향을 읽을 때는 항상 자기 위치도 함께 본다. 바람의 방향과 동물의 진로가 같다면 그 동물은 사람의 냄새를 맡을 가능성이 높다. 바람의 방향이 동물의 진로와 반대라면 사람이 그 동물의 다음 자리를 예측하기 더 쉽다. 위키백과의 Fair Chase 항목이 정리한 공정한 추적의 원칙도 이 단계의 자세에 깊이 관련된다. 동물에게 자기를 알리지 않고 자료만 모으는 자세가 좋은 추적자의 자세다.
넷째, 신선도
흔적의 신선도는 그 동물이 얼마나 멀리 있는가를 말해 준다. 가장 신선한 발자국은 흙이 아직 마르지 않은 발자국이다. 발자국의 가장자리가 또렷하고, 발자국 안에 떨어진 잎이나 먼지가 거의 없다.
덜 신선한 발자국은 가장자리가 마르고, 발자국 안에 작은 먼지나 잎이 떨어져 있다. 시간이 더 지나면 가장자리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발자국 자체가 풍경에 녹아 들어간다. 신선도를 읽는 자세는 시간에 대한 감각이다. 같은 자리에 여러 시간대의 발자국이 섞여 있을 수 있고, 그것들을 분리해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날씨의 자료
신선도를 읽을 때는 그날의 날씨를 함께 본다. 비가 온 뒤의 발자국과 마른 날의 발자국은 같은 시간이 지나도 다른 모습을 가진다. 새벽 이슬이 있는 날의 발자국은 정오에 본 같은 발자국과 다르게 보인다. 날씨 자료가 없으면 신선도 자료도 신뢰할 수 없다.
자기 발자국의 자료
흔적을 읽는 자세를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 발자국을 먼저 읽어 보는 것이다. 야영지를 떠나기 전, 자기가 어제 걸어간 자리의 발자국을 한 번 더 본다. 자기 발자국의 깊이는 어떤가, 자기 보폭은 얼마인가, 자기 발자국의 가장자리가 어떻게 마르고 있는가. 자기 자료를 먼저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다른 동물의 자료도 읽을 수 있다.
자기 발자국의 자료를 한 시즌 모아 보면, 자기가 어느 자리에서 자기 호흡이 흐트러지는가도 보인다. 호흡이 흐트러진 자리의 발자국은 깊이가 일정하지 않고, 방향도 미세하게 흔들린다. 이 자료는 자기 자신의 자료이지만, 다른 동물의 자료를 읽는 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 자리에 두 시간
흔적을 읽는 가장 깊은 자세는 한 자리에 두 시간을 머무는 자세다. 한 자리에서 모든 단서를 모으는 시간이 필요하다. 두 시간을 머문 자리의 자료가 다섯 자리를 빠르게 본 자료보다 더 정확하다. 추적은 양이 아니라 깊이의 작업이다.
이 시리즈에서 한 자리에 머무는 자세에 관한 첫 자료는 사냥터의 침묵과 신호에 있다. 그 글에서 다룬 침묵의 자세와 이 글의 흔적 읽기 자세는 같은 한 사람의 두 가지 면이다. 침묵 없이 흔적을 읽을 수 없고, 흔적 없이 침묵의 의미를 알 수 없다.
마지막 단서, 자기 직감
네 가지 단서를 다 모은 뒤에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 자기 직감이다. 자료가 자기에게 뭔가를 말하고 있는 느낌, 그 느낌은 무시할 수 없는 자료다. 자료가 다 갖춰진 추적자의 직감은 자료의 누적이다. 직감은 신비가 아니라 익숙함이다.
그러나 직감이 자료를 대신하지는 않는다. 직감으로 시작한 추적은 자료로 검증되어야 한다. 자료 없이 직감만으로 따라간 추적은 결국 길을 잃는다. 자료와 직감, 둘 중 어느 하나도 절대화하지 않는 자세가 평생 좋은 추적자로 남게 한다. 흔적은 어디에나 있지만, 그 흔적을 다 자료로 만드는 사람은 드물다. 그 드문 사람의 자세를 노트에 한 자세씩 적어 두는 일이 이 시즌의 과제다.
흔적의 윤리
흔적을 읽는 자세에는 한 가지 윤리가 따라온다. 자기 자료를 위해 동물의 흔적을 추적하는 일은 그 동물의 평온을 흔드는 일이기도 하다. 자료가 풍부한 자리일수록 동물의 일상이 그 자리에 있다는 뜻이고, 추적자가 그 자리에 자주 다녀가는 일은 동물의 일상을 흔들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좋은 추적자는 한 자리에 너무 자주 다니지 않는다. 같은 발자국 자리에 세 번을 가 본 뒤에는 자리를 옮긴다. 한 자리의 자료가 다 모이지 않았더라도, 그 자리의 동물에게 자기 자취를 너무 많이 남기지 않는 자세를 우선한다. 자료보다 풍경의 안정이 더 무겁다. 이것이 추적자의 첫 번째 윤리다.
두 번째 윤리는 자료의 공유다. 자기가 모은 흔적의 자료를 다음 추적자에게 공유하는 자세, 그 자세가 야외 학습의 깊이를 만든다. 자료를 자기 안에만 두고 다음 사람에게 전하지 않으면, 같은 종류의 시간 낭비가 매 세대마다 반복된다. 자료의 공유는 자료의 자세 중에서도 가장 어른의 자세다.
흔적이 가르치는 한 가지
흔적을 오래 읽은 사람은 결국 한 가지를 알게 된다. 야생은 자기를 다 보여 주지 않는다. 흔적은 자료지만, 그 자료가 야생의 모든 것을 말해 주지는 않는다. 가장 깊이 본 추적자도 자기가 본 것의 90퍼센트를 모른다. 안다고 믿는 순간 자료가 닫힌다. 모른다고 인정하는 순간 자료가 다시 열린다.
이 자세는 다른 어떤 자료 작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자기가 본 것의 한계를 아는 사람만이 자료를 자기 자료로 만들 수 있다. 한계를 인정하는 자세는 약함이 아니라 깊이다. 한계를 모르는 추적자는 자기 자료를 절대화하고, 그 절대화가 다음 시즌의 자료를 닫는다. 다음 시즌의 자료가 닫힌 추적자는 결국 그 자리에서 멈춘다. 멈춘 추적자는 자기 자료의 한계를 풍경의 한계로 착각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좋은 추적자의 마지막 자세는 늘 같은 한 자세다. 자기가 모르는 자리를 인정하고, 다음 시즌에 그 자리로 다시 가는 자세. 한 시즌만에 다 익히려 하지 않는 자세가 평생 좋은 추적자로 남게 한다. 흔적의 자료는 한 시즌의 자료가 아니라 평생의 자료다.